강해5 - 참된 회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욘 2.1-10[2]).

20201206(양무리교회)

 

 

 

강해5_ 참된 회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Jon. 2.1-10(2)

 

   본문 관찰

 

   주께서 나의 음성을 들으셨나이다(1-4)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5-6)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7-9)

   여호와께서(10)

   

         1엉망으로 다!

         2회개하면 다?  

         3그럼 회개의 결과라고?

 

 

 

회개란 무엇인가.

 

요나는 2장에서 다른 사람이 된다.

1장에서 요나는 분명 니느웨(앗수르의 수도)를 거부했다. 이방 나라가 하나님의 구원을 받는 것, 이방인들이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을 요나는 죽음보다 싫었다. 이 일을 하시려는 하나님의 명령을 그래서 거부하고 다시스로 간 것이다. 결국 1장이라는 거대한 죽음의 파도 앞에서도 죽으면 죽으리라는 각오로 끝내 바다에 자신을 던졌다. 하나님의 명령마저 죽음으로 거부한 것이다. 핵심은 니느웨로 가고자 하는 마음이 1도 없었다. 그리고 2장이다:

 

    [2: 요나의 회개]

    “내가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2)

    “내가 주의 목전에서 쫓겨났을지라도 다시 주의 성전을 바라보겠다”(4)

    “주께서 내 생명을 구덩이에서 건지셨나이다.”(6)

    “나는 주께 제사를 드리며 나의 서원을 주께 갚겠나이다.”(9)

  

결국 요나는 물고기 뱃속에서 기도를 통해 하나님께 고백한다: ‘주여, 나를 보내소서!’ 드디어 가겠다고 한다. 왜 이렇게 되었을까. 여전히 가고자 하는 마음은 별로이고 그래서 가기 싫은데 하나님이 끝까지 코너로 몰아넣으시니까 어쩔 수 없이 가겠다고 한 것인가. 위 구절들을 종합해 보면 이것은 아닌 듯하다. 요나는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여전히 없는 게 아니다. 그렇다고 적극적으로, 행복한 마음으로, 주저함이나 망설임 없이 긍정의 마음으로, 소명에 불타오르는 전도자로 가겠다는 쪽은 또한 아닌 것 같다.

그렇다면 지금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한 2장의 회개는 가짜인가. 아니, 무엇인가 좀 부족한가. 그 진실성(진정성)을 의심해도 되는 것일까. 그렇다면 위기를 넘겨보려고, 일단 소나기를 피해 보려고 가겠다고 한 것일까. 물론 아니다. 정말로 여전히 가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그는 2장에서 결코 회개하지 않았을 것이다. 그렇다면 2장에서 요나는 회개를 한 게 맞다.

   

 

회개란 무엇인가.

 

요나가 2장에서 할 수 있는 것은 무엇인가. 그 무엇인가를 통해, 그러니까 2장을 통해 마침내 1장이 해결되고 요나는 새로운 3장을 맞는다. 요나가 무엇인가 하는 것이 어떤 결과를 만들어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2장에서 요나가 한 것들은 매우 중요한 일이다.

그럼 2장의 요나는 무엇을 행하는가. 1절이다: “요나가 물고기 뱃속에서 그의 하나님 여호와께 기도하여이렇듯 사건은 요나와 하나님 사이에서 일어난다. 사실 11-2절 이후에 이 두 당사자는 분리되었었다. 요나에 의해서다. 그런데 이 둘이 다시 만난다. 역시 요나에 의해서다. 하지만 요나 홀로인가. 아니다. 그는 지금 물고기 뱃속이자 바다 속 깊은 곳에 홀로 있지 않다. 그는 지금 하나님 앞에 있다. 그리고 1장의 요나 자신을 극복해 낸다.

비록 1장이라는 죄와 불순종을 그대로 안고서 2장이라는 막다른 곳에 와 있지만, 그러나 요나는 1장을 자신에게서 분리(극복, 해결)해 낸다. 그래야 3장으로 갈 수 있어서다. , 오늘 메시지는 이 부분을 주목한다. 이미 1장은 과거인데 2장이란 현재’(오늘)의 요나는 여전히 그 과거에 묶여있다는 얘기다. 지금 2장인데 아직 1장에 묶여 있다. 그래서일까, 많은 그리스도인들이 지금 서 있는 현재는 2장인데 1장을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그렇다면 왜 그럴까. 무엇이 문제인가.

 

1장에 머물며 2장을 거쳐 3장으로 넘어가지 못하는 이유들

1장에서 3장으로 돌아가기 위해서는 2장을 통과해야 한다. 이것이 무엇인가. 바로 회개다. 그런데 2장으로 넘어오지 못한다. 회개를 모르는 것이다. 여전히 1장에 머물러 있는 이유, 3장으로 넘어오지 못하는 이유가 무엇인가. 회개하지 않아서다. 어쩌면 회개할 줄을 모르는 것일 수도 있다. 2장으로 돌아서지 못할까. 바로 이런 이유들 때문이다.

 

1장이라는 패배주의, 그 쓴 맛

하나님이 원하시는 것은 잘 알고 있다. 그러나 그 뜻대로 행하고 싶지는 않다. 이유는 여러 가지다. 각 사람마다 다 다르다. 그리고 그 끝이 절망이고, 실패이고, 회복불능 상태일 수도 있다는 것을 잘 안다. 동시에 그 불길한 예감처럼 패배한다. 그래서 더 시리고 아프다. 그만큼 다시 일어나는 게 어렵고, 때로 많은 시간이 걸리기도 하기 때문이다.

 

죄책감

인간은 죄를 지어 죄인이기도 하다. 그러나 엄밀히 말하면 죄인이기에 죄를 범한다. 하나님은 율법을 통해 무엇이 죄이고, 악이고, 하나님이 금하신 명령인가를 말씀하셨다. 그래서 그 금도를 넘어섰을 때 누구나에게 죄책감이라는 신적(神的) 장치를 넣어 놓으셨다. 놀라운 것은 죄가 반복되고 그것이 커질수록 죄책감도 그만큼씩 더 커지고 강렬해진다는 점이다. 보통 여기서 착각한다. 이 부분이 문제다. 이 죄책감으로 도피하기 때문이다. 달라진 것은 없다. 그마나 죄책감이라도 더 느끼게 하는 것이 자신이 범한 죄에 대한 태도라고 여기기 때문이다. 하지만 거기까지다. 그런다고 죄가 물럭가거나, 씻어지거나, 가벼워지는 것은 아니다. 죄책감을 너 느끼기 더욱 아파한다는 감정에 도피함으로써 죄의 짐을 조금이나마 가볍게 한 것처럼 느낄 뿐이다. 이것이 죄의 사악하고 가증한 얼굴이다.

 

불신앙, 곧 믿음 없음이다. 이것은 영적무지(靈的無知).

죄를 범할 줄은 알았어도 그것을 극복하고 해결하고, 그래서 죄로부터 벗어나는 길은 알지 못한다. 아니 믿지 않는 것이다. 용서 받을 수 없는 죄는 있으나 용서 받지 못할 죄인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이고, 자신의 죄보다 하나님의 용서와 은혜가 더 크고 놀랍다는 것을 믿지 않는다. 이것이야말로 계속해서 죄 가운데 1장에 머물러 뭉게도 앉아 있는 죄인들의 실상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말씀하신다: “만일 우리가 우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우리 죄를 사하시며 우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요. 만일 우리가 범죄하지 아니하였다 하면 하나님을 거짓말하는 이로 만드는 것이니 또한 그의 말씀이 우리 속에 있지 아니하리라.”(요일1.9-10)

 

금위환향 하고 싶은 세속주의

인간에게는 죄에 대한 묘한 자존심이 있다. 자신이 저지른 일이기에 어떻게든 그것을 자신의 힘으로 되돌리고, 그렇게 할 뿐만 아니라 이전과는 다른 모습으로 보란 듯이 보여 주고 싶어한다. 이것은 경건주의를 가장한 매우 세속주의적이고 인본주의적인 죄악의 또 다른 자화상이다.

하지만 이것은 자충수다. 죄의 늪으로 더욱 빠져들어가는 악순환일 뿐이다. 예전에 이런 식으로 어떻게든 극적인 반전을 경험한 사람이라면 이번에도 그런 일이 일어나기를 기대한다. 그렇기 때문에 그것만큼 과거, 1장으로부터 벗어나지 못한다.

그래서일까. <물고기뱃속신앙훈련학교>라는 하나님이 주신 은혜의 경험이자 기회를 거절하고 성공주의라는 것으로 옷 입으려고 몸부림친다. 하나님의 식을 세상적이고 세속적인 식으로 풀어내겠다고 헛된 춤을 추는 셈이다.

 

2장처럼 한 후 3장으로 사는 것 같지만 뭔가 이상한 유사품들

성경적인 하나님을 아는 지식이 아닌 인본적인 세상적 지식으로 가득찬 그리스도인에게서 보여지는 현상들이다. 한 마디로 정리하면 회개까지도 하나님으로부터 무엇인가를 얻어내려는 먹이감으로 사용하고 싶어한다.

오랜 신앙생활(설교, 성경공부, 신앙훈련 프로그램)을 통해 들은 게 있어서 회개했다고 고백한다. 하지만 좀 더 들어가 보면 이 회개라는 것이 좀 수상하다. 인과론(因果論)적인 면에서 회개라는 행위를 했으니(원인), 결과 곧 내가 원하는 걸 해 달라는 것은 성경이 말하는 회개가 아니다. 이것은 회개를 교리적으로만 이해한 나머지 -마음과 심령 안에서 이루어진 하나님의 은혜의 부어주심에 따른 회개가 아니라- 기계적인 면에서 회개 행위를 한 것이다. 그러니 회개한 자에게 약속한 것을 시행해 달라는, 결국 회개를 빌미로 삼아 내가 바라고 원하는 결과를 만들어 보겠다는 인본주의일 뿐이다. 이것은 성경이 말하는 바른 회개라고 할 수 없다.

이런 사람은 실패와 실수가 낳은 죄에 대한 진정한 회개를 한 적이 없다. 그러기 때문에 머리 아프면 아스피린 먹듯이, 하나님의 말씀대로 언행하지 않고 불순종하면 회개라는 종교 행위를 교리가 요구하는 방식으로 행한다. 그리고 회개했다고 생각한다. 하지만 그랬음에도 그는 여전히 1장의 후미진 곳에 누워 하나님의 명령과 말씀을 따라 사는 것에는 한 걸음도 띄지 않는다.

 

 

부스러기 묵상

 

    구원의 서정(Luis Berkhof)

                               신앙-칭의-성화 ... 영화

                        → 회개

    소명 중생

 

신학에서 말하는 구원의 순서 그 가운데 우리의 관심은 회개다. 그런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회개의 위치다. 회개는 중생, 즉 거듭남 그 다음에 자리한다. 그러니까 회개라는 행위가 원인이 되어여, 즉 먼저 있어서 중생 곧 거듭남이 발생한다고 보지 않는다는 얘기다. 만일 그리된다면 중생은 인간의 행위에 의해서 주어지는 것이 되는, 그러니까 회개라는 행위가 가져다주는 결과라는 것인데, 그렇지 않기 때문에 그래서 신학은 고민한다. 구원이 하나님의 은혜, 그러니까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이다. 아멘이다. 그렇지 않고 이 구원을 인간이 회개하는 행위(노력, 공로)를 통해서 만들어 내는 것이라면 그리스도의 구원과 값없이 주시는 십자가 은혜는 무용한 것이 되고 만다.

때문에 신학은 회개를 부르심을 입은 자가 인간의 행위(선행, 노력, 공로)가 아닌 전적인 하나님의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깨닫고 아는 순간, 그 한량없는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반응이다고 본다. 요나에게서 2장 사건은 바로 이런 것이다.

요나서 1장과 3장 사이에 있는 2장을 괄호로 묶어 보자. 그러면 1장처럼 참담하게 무너졌는데도 하나님은 3장에서 두 번째로 요나에게 같은 사명을 주시고자 찾아오신다. 그럼 여기서 우리는 생각한다. 무슨 일이 있었나? 그렇지 않겠는가. 1장 그대로인데 하나님이 아무런 일도 없었다는 듯이 이처럼 다시 사명(소명) 앞에 세우시겠는가. 이게 2장의 위치다. 하나님은 이처럼 요나를 몰아가신 것이다.

나를 들어 바다에 던지라.”(1.12a)고 했고, 그래서 바다에 던졌는데 117절이다. 이렇게 3일을 지낸 후에 물고기가 자신을 육지에 토해내자 그는 물고기뱃속에서 사명과 소명의 땅에 발을 딛고 서 있다. 그럼 이렇게 정리할 수 있다.

하나, 3일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다.

, 회개했기에 이어진 이야기가 아니다. 그것과 전혀 상관이 없다. 바다에 던져졌는데 물고기뱃속이었고 거기에 3일을 생존해 있게 되어서, 그랬으니 무슨 일이 그곳 2장에서 일어난 것이다.

, 그래서 3장으로 이어지게 된다.

, 그렇다면 2장은 요나가 혼자 만들어낸 회개의 무대가 아니다. 하나님이 그에게 회개의 은혜를 베풀어주신 것이다.

, 정리해 보자. 회개가 공로인가? 이 값없이 주시는 은혜의 선물을 받은 우리가 회개를 이처럼 도적질해도 되는 것인가. 인간의 회개가 하나님마저도 그것에 꼼짝 못하시도록 만드는 능력이라는 말인가. 언제부터 인간이 회개를 무기로 하나님을 마음대로 부리고, 자신이 원하는 것을 얻어내는 수단으로 사용하게 되어 버렸는가.

그렇다면 회개는 인간의 공로이거나, 이것을 무기로 하나님을 설득해서 결국 자신이 원하는 다음 이야기를 충족시키는 도구가 아니다. 그것은 회개를 빙자해서 하나님을 협박하는 것이다. 그럼 회개는 무엇인가. 하나님의 은혜다. 요나의 2장은 하나님 때문이다. 우리의 후반전이자 연장전도 하나님의 은혜 때문이다. 나의 회개는 그 다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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