강해1 - 폭풍행전, 거의 깨지게 된 때까지!(욘 1.1-5)

20201004(양무리)

  

 

 

폭풍행전, 거의 깨지게 된 때까지!

Jon. 1.1-5

  

   본문 관찰

 

   여호와의 말씀이 아밋대의 아들 요나에게 임하니라

   너는 일어나 가서 외치라

   그러나 마침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

   그러나 요나는 배 밑층에 내려가서 누워 깊이 잠이 든지라

   

 

그러나 폭풍행전 그러나

 

하나님이 한 사람, 요나를 찾아오신다.

말씀 한마디만 하시면 그것으로 상황 끝일텐데 어쩌면 가장 느리고, 복잡하고, 또한 답답해 보이는 방식을 취하신다. 하나님이 많고 많은 사람들 가운데 아밋대의 아들 요나(Jonah, 왕하14.25; 12.39-41, 16.4, 11.29-30,32)를 찾아오신 것이다. 하나님이 찾아오심으로써 그는 선지자로 부르심을 받는다. 요나가 살고 있는 시대 역시 무수한 사람들이 있었다. 화려한 명문가에서 출생하여 당대의 학문을 익히며 미래를 준비하는 젊은이들도 있었을 것이고, 유명한 선지자 밑에서 선지자 수업을 받으며 사람들로부터 주목을 받고 있던 인턴 선지자들도 있었을 것이다. 하지만 가드헤벨 아밋대의 아들이다.

   

 

사명과 불순종(1-3)

 

   “너는 일어나 가서 외치라!”

   “그러나

   “여호와의 얼굴을 피하려고

 

요나의 비극은 그러나’(3a)에서부터다. 이처럼 많은 사람들이 요나처럼 그러나로 살아간다. 사명을 받았음에도 하나님과 반대편에 서 있다. 하나님 따로, 나 따로다. 우리시대에도 하나님과 별거생활을 하는 사람들이 의외로 많다. 이 일은 하나님이 사람을 떠나는 것이 아닌, 사람이 하나님을 떠나는 것으로 시작된다. 그토록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두드리다가도 자기가 원하던 방식이 아니면 슬슬 그 자리를 피한다. 우리가 하나님이 아닌 그러나를 가슴에 품고 있는 한 이 일은 언제나 발생하게 되어 있다. 요나는 하나님의 사명이 아닌 자신의 몫을 챙기는 것으로부터 하나님과 구별되는 그러나 인생이 되고 만다. 이 첫 번째 그러나가 어떤 결과를 가지고 올지 지켜보자.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오셨는데 요나는 하나님을 피하여 떠난다. 죄는 그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는 것이다. 하나님만이 요나를 짝사랑한 셈이 되고 말았다. 언약을 파기한 쪽은 요나였고, 그래서 그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려고 하나님을 떠나 먼 곳으로 도망하고 있다. 하나님이 찾아오셔서 특별한 은총을 부어 주셨는데도 그가 하나님을 피해 도망자로 자신의 신분과 수준을 스스로 끌어내리고 있으니 이것이 기적이 아닌가.

마침 다시스로 가는 배를 만난지라”(3a)까지는 좋았다. 그리고 배삯을 지불하고 배에 올라 지중해를 가로질러 앗수르(앗시리아)의 수도 니느웨 반대편으로 가는 도피까지도 좋았다. 순풍에 돛을 단 배처럼 일이 척척 잘 진행되고 있으니 요나는 아마 하나님의 뜻이나 보다그랬을 것이다.

사실 일이 잘 풀릴 때 그때가 위기다. 적당히 타협하고, 신앙의 울타리를 크게 벗어나지 않는 범위 내에서 세상과 적절하게 거래하고, 마음에 찔리지 않을 정도의 안전지대를 만들어 놓고 난 그 정도는 타락하지 않았다고 스스로 자족하고, 주일은 죽일처럼 평일은 죄일처럼 살아도 크게 손해나는 일없다고 안도하고 있으니 그게 답답한 일이다.

   

 

풍우대작(風雨大作, 4-5)

 

   “여호와께서 큰 바람을 바다 위에 내리시매

    바다 가운데에 큰 폭풍이 일어나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4)

   “그러나”(5b)

 

마침내 하나님이 개입하신다. 하나님이 그냥 요나를 버리셨다면 그는 다시스로 가는 배에서 하나님과 영원히 이별했을 것이다. 그러나 하나님은 점점 멀어져가는 요나를 두 번째로 찾아오셨다. 첫 번째는 소명자로 부르시는 하나님으로 오셨다. 그러나 이번에는 다르다. 그가 여호와의 낯을 피하여 도망자로 전락했을 때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은 폭풍으로 찾아오셨다. 다시스로 가는 배를 탈 때까지만 해도 요나는 순조로웠다. 하나님의 낯을 피하고 도망하는데도 일이 잘 진행되고 있다. 많은 경우 영적으로 혼돈하는 지점이 여기다. 하나님을 골탕 먹이고도 잘 되는 사람을 보면서 과연 하나님이 살아 계신가?”라는 의문을 갖는다. 많은 사람들이 여기서 넘어진다.

바로 그때 바다 위에 대풍이 시작되었다.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오신 것이다. 역시 사람들은 약간의 혼란을 느낀다. 폭풍은 자연현상이 아닌가. 맞다. 그런데 하나님은 말씀이 아니라 자연현상인 큰 바람으로 찾아오셨다. , 그렇다면 폭풍은 단순한 자연현상이 아니다. 하나님의 찾아오심의 한 현상이다. 문제는 말씀으로도 깨닫지 못하는데 폭풍우를 알까. 이게 문제다. 요나는 폭풍 가운데 찾아오신 하나님을 보지 못한다. 오직 큰 바람만을 본다. 현상만을, 그리고 그것의 결과만을 본다. 아무도 큰 바람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을 보고, 그분의 메시지를 듣지 못했다. 하나님이 하셨고, 그리고 계속해서 폭풍 중임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지금 사람들은 하나님의 임재를 대면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선지자도 예외가 아니다. 첫 번째 찾아오셨을 때는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았는데(1-2), 이번에도 역시 여호와께서 내리시매”(4a) 임에도 불구하고 이다. 바로 이 부분이 우리가 옷을 찢지 않고 마음을 찢어야 할 대목이다. 하나님이 지금 문 밖에 서서 두드리시는데 듣지 못한다. 귀가 있어도 듣지 못하고, 눈이 있어도 보지 못한다: “이사야의 예언이 그들에게 이루어졌으니 일렀으되 너희가 듣기는 들어도 깨닫지 못할 것이요 보기는 보아도 알지 못하리라.”(13.14; 6.9) 바로 우리시대가 이렇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도 그가 하나님이심을 알지 못한다. 하나님은 큰 바람으로도 말씀하신다. 하나님은 요나에게 말씀과 폭풍을 동시에 사용하고 계신다.

 

   “배가 거의 깨지게 된지라.”(4b)

 

그런데 파국(破局)이 아닌 무엇인가 희미한 여백이 남아 있다. 그것은 요나의 배가 큰 바람 앞에 완전히 깨어져 침몰하지 않고 거의 깨어지게 될 정도였다는 점이다. 하나님이 요나의 인생에 그만큼만 개입해 들어오셨다. 이것은 깊은 의미가 있다. 요나의 일생은 4절로 끝났어도 그는 아무 말 할 수 없는 죄인이다. 많은 경우 하나님은 4절로 인생을 끝내시곤 한다. 그런데 사명을 저버리고, 하나님의 임재와 말씀을 피했던 요나인데 그는 아직 깨어지지 않았다. 이 부분이 압권이다. 하나님의 은혜가 아니면 설명될 수 없는 인생, 그가 바로 요나, 바로 요 나!’. 깨어졌어도, 하나님이 그의 인생 쪽박을 깨뜨려 버리셨다할지라도 그것은 지극히 당연하다. 그런데 하나님은 거의 깨지게 된바로 거기까지만 이다.

그러므로 비록 폭풍 가운데 처해 있다할지라도 아직 침몰하지 않았다면 그것만큼이 은혜의 때이다. 지금이 구원과 은혜 받을 만 한 때다. “내가 지금 폭풍 가운데 있구나!”라고 말 할 수 있다는 것까지가 은혜라는 사실을 통촉해야 한다. 하나님은 지금 이 시간도 각기 자기 소견에 옳은대로 행하며 살아가는 우리에게 은혜를 거두어 가시지 않으셨다. 그러니까 더욱 지금은 하나님의 낯을 피할 때가 아니다. 사명과 소명을 저버리고, 계속해서 미루면서 딴청 부리고 있을 때가 아니다. 하나님이 주신 것이 아닌, 하나님과 상관없이 선택한 것은 언젠가 깨어지게 되어있다. 지금도 점점 깨어지고 있고, 이제 거의 다 깨어졌을지도 모른다.

그렇기 때문에 완전히 깨어지지 않고, 거의 깨어지게 된 것까지가 또 하나의 하나님의 은혜가 아닌가. 요나는 복음을 전하는 소명을 깨뜨렸는데 하나님은 요나를 깨뜨리시지 않고 그가 걸어가고 있는 삶의 환경을 깨뜨리신다. 하나님은 요나의 낯을 피하지 않으신다. 하나님은 지금 깨어지게 된 요나를 다시 재창조하시기 위해 비록 폭풍을 동반하셨지만 그를 다시 찾아 오셨다. 큰 바람의 원인이 무엇인가? 요나의 것은 모범답안이 있으니까 쉽게 답을 알아 맞추는데, 그럼 현재 내가 심각하게 당면하고 있는 삶의 문제, 내가 만난 큰 바람의 원인은 무엇인가? ‘요 나!’는 그걸 모르고 있다.

그래서 사람들은 두려워한다. 이것이 환난 앞에 섰으나, 그러나 그 이유를 모르는 사람들의 대체적인 반응이다. 그럴수록 여러 가지 다양한 해법들을 찾는다. 그러나 요나의 딜레마가 물건을 바다에 던지는 것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내가 통과해 가고 있는 대풍은 지금 사용하고 있는 방법으로 해결될 수 있을까? 물건 몇 개 포기하는 것으로, 돈 얼마 잃고, 그래서 , 재수가 없구나. 왜 이렇게 꼬이지!” 그러고서 몇 가지 정리하면 폭풍이 물러갈까? 바로 이 지점에서 실패하고 있는 부분이다.

큰 바람은 하나의 사인(sign)일 뿐이다. 그냥 우연히 만난 것이 아니다. “뭐 그럴 수 있지하는 정도로 넘어갈 그런 성질의 것이 아니다. 물론 살다보면 항상 맑고 화창한 것만은 아니다. 바람도 불고, 비도 오고, 구름도 끼고, 무지개도 뜨고 그런다. 그러니까 내가 만나는 모든 풍랑을 다 하나님의 채찍이라거나, 발생하는 모든 사건이 하나님의 심판이라는 뜻은 아니다. 그렇지만 하나님 안에는 우연은 없다. 요나는 하필 폭풍 불어오는 날에 배를 탄 것뿐이다라고 말 할 수 없다. 인간은 사건을 만들지만 하나님은 섭리를 이루어 가신다. 요나는 폭풍을 만날 수 밖에 없는 원인을 제공했지만 하나님은 큰 바람을 통해서도 당신의 섭리를 성취하신다.

  

 

부스러기 묵상

 

   “그러나 깊이 잠이 든지라.”(5b)

 

요나는 폭풍 가운데 있는데 그 원인은 모른다.

하나님이 찾아오셨는데 하나님의 임재를 깨닫지 못한다. 이것이 우리네 인생의 최대 딜레마다. 그러니까 그러나 인생일 수 밖에 없다. 그는 선지자다. 하나님이 임하신 사람이다.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이다. 하나님이 준비해 놓으신 사명자다. 마침내 하나님은 당신의 때에 그를 복음을 증거하는 선교사로 파송하셨다. 그러나 그가 하나님의 오심과 그 이유를 알지 못한다. 첫 번 그러나는 하나님의 낯을 피하였고, 두 번째는 그 일을 감당하게 만드시려는 하나님의 또 다른 현현인 폭풍 앞에 역시 그러나 요나로 서 있다.

하나님이 임한 사람, 하나님의 복음을 전하라는 사명을 받은 사람의 모습치고는 너무 초라하다. 그는 깊은 영적 잠에 빠져있다. 하나님은 폭풍을 통해서 말씀하고 계시는데 요나는 그 소리를 외면하고 깊이 잠이 들었다.

주님은 말씀하신다: “너는 일어나 가서 복음을 외치라!” 그런데 그는 지금 깊은 잠에 빠져있다. 배가 거의 깨지게 되었는데도 잠을 자고 있다. 사명자는 배가 깨지기 전에 영적 잠에서 빨리 깨어나야 한다. “거의 깨지게되어 버리는 때까지 기다리지 말고, 지금 평안할 때에 부르심에 응답해야 한다.

지금은 자다가 깰 때다. 내 인생행전 또한 거의 깨지게”(4) 되기 전에, ‘지금하나님의 거룩한 소명에 응답해야 한다. 기회는 언제나 있지 않다. 내 코의 호흡이 오늘 밤 이 세상을 떠나 지옥@천국에서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점을 기억해야 한다. 잠이 든 사명자, 그는 깨어날 수 있을까.

 

  

제목 날짜
요나9 - 하나님의 설복.設伏(욘 4.6-11) 2021.02.27
강해8 - 요나 콤플렉스.complex(욘 4.1-5) 2021.02.13
강해7 - 믿음의 후반전, 니느웨를 깨운다(욘 3.5-10). 2021.01.23
강해6 - 요나에게서 ‘요 나!’를 본다(욘 3.1-4). 2021.01.02
강해5 - 참된 회개, 하나님의 은혜입니다(욘 2.1-10[2]). 2020.12.06
강해4 - 왜 물고기 뱃속에 넣으셨을까?(욘 2.1-10[1]) 2020.11.08
강해3 - 물고기뱃속신앙훈련학교(욘 1.17) 2020.10.31
강해2 - 폭풍행전, 그 속에서도 일하시는 하나님(욘 1.6-16) 2020.10.24
강해1 - 폭풍행전, 거의 깨지게 된 때까지!(욘 1.1-5) 2020.10.19
요나 맥잡기 2020.07.0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