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종, 메시야의 노래(사 49.1-26)

20210727-28(묵상)

 

 

 

나의 종, 메시야의 노래

Isa. 49.1-26

 

    본문 관찰

 

    나는 종(1-7)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6a)

    이방의 빛으로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 하리라(6b)

    너는 기업(8-13)

    너로 백성의 언약을 삼으며 나라를 일으켜(8b)

    내가 잡혀 있는 자에게 이르기를 나오라(9a)

    그들이 주리거나 목마르지 아니할 것이며(10a)

    하늘이여 노해하라 땅이여 기뻐하라(13a)

    복락원(復樂園, 14-26)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16a)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느니라(17-18a)

    내가 뭇 나라를 민족들을 향하여 나의 기치를 세울 것이라(22a)

    그들이 네 아들들을 딸들을 어깨에 메고 올 것이며(22b)

    내가 네 자녀를 내가 구원할 것임이라(25b)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속자요 전능자인 줄 알리라(26b)

  

 

여호와의 종

 

49~53장은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언이다.

의 등장이 좀 어려운 부분이고(48.16b, 49.1- ), 그래서 나의 종은 누구를 가리키는지 여러 생각을 하게 한다. 물론 이스라엘을 가리키는 것 같지만(3) 49장의 분위기로 보아 실패한 나의 종 이스라엘(42.18-25)이 맡을 수 있는 사명으로 보기에는 좀 석연치가 않다. 따라서 메시야이신 나의 종’(42.1-17)이 궁극적으로 감당해야 할 임무를 말하는 것에 가깝다. 다시 말하면 메시야의 앵글로 보면 가장 자연스럽게 풀린다.

메시야는 이스라엘과 이방까지 -예루살렘에서 땅 끝까지다(1.8)- 하나님의 구원을 성취할 것이다(6). 그것도 고난 받는 종으로서 말이다(7). 하나님은 당신의 종(‘나의 종’)을 통해 은혜와 구원으로 나라를 일으켜 그들에게 그 황무하였던 땅을 기업으로 상속하게 하”(8b)실 것이며, 무엇보다 그 나라의 백성들은 동서남북에서 모여들어 하나님을 찬양하게 될 것이다(12-13).

마침내 종으로서의 메시야는 찬란한 구속사(救贖史)의 무대를 향해 숨 가쁘게 이동하고 있다. 메시야는 이스라엘과 이방(6), 열방’(22)을 향하여 일하심을 통해 하나님은 모든 육체가 나 여호와는 네 구원자요 네 구속자요 야곱의 전능자인 줄 알리라!”(26b)는 이 세상을 향한 당신의 꿈을 성취해 가실 것이다. 비록 그 나라의 백성들이 함량미달이고(14), 또 방해하는 자들이 날뛰지만 말이다(17b,19b,26a).

   

 

나는 종(1-7)

 

온 열방은 메시야가 육신을 입고 강림하실 것을, 그것도 메시야 자신의 입을 통해 직접 듣게 된다(1-2). 물론 이것은 여호와께서”(1), “내게 이르시되”(3a), “여호와께서 말씀하시나니 그가 이르시되”(5-6a), “여호와께서 이같이 이르시되”(7)에서처럼 하나님의 말씀하심과 또 보내심에 의해서다. 그러니까 메시야는 하나님에 의해서 온 열방 앞에 드디어 그 모습을 드러내신다.

하나님의 종인 메시야가 준비되고 있을 때(1-3, 42.1-17), 그러나 하나님의 종인 이스라엘은 종으로서의 역할을 감당하는 일에 부족함이 많았었다(4, 42.18-25). 지금 나의 종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아 전하는데 이스라엘은 전혀 반응을 보이지 않음으로써 -또한 부정적으로 반응한다(53)- 그로 하여금 좌절하고 실패하게 만든다(4a). 이것이 이 말씀을 듣고 있는 그 시간까지의 이스라엘의 모습이다. 그래서 사람에게 멸시를 당하는 자, 백성에게 미움을 받는 자, 관원들에게 종이 된 자”(7a)라 칭함을 받는 것일까.

하지만 놀라운 것은 그럼에도 불구하고 종은 자신의 시선을 하나님께로 향한다(4b). 백성들이 자신이 하나님으로부터 보내심을 받았다는 것까지 무시(의심)되고 있는 상황에서 말이다. 이것이 종으로 하여금 자신의 권위를 자신의 사역의 결과에서 찾지 않고 자신을 보내신 자’(하나님)에게서 찾게 하는 이유다.

어떤 의미에서 지금 종은 사면초가(四面楚歌). 자신의 사역은 결과적으로 아무 것도 이룬 것이 없고, 또한 백성들로부터도 거부를 당한다. 하지만 나의 종의 놀라운 점은 이런 형편 중에서도 자기에게 맡겨진 사명을 포기(중단)하지 않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간다는 점이다. 결과주의(성과주의)가 만능인 시대를 살아가는 우리에게 나의 종이 던지는 메시지는 무엇일까?

바로 그때 하나님은 말씀하신다(5- ). 이제 하나님이 주시는 나의 종메시야의 임무는 분명하다. 이것은 하나님께로부터 오는데(5,7b) 크게 두 가지다. 백성에게는 거부되고 하나님께는 인정을 받는 종, 어찌할까. 첫째는, “야곱의 지파들을 일으키며 이스라엘 중에 보전된 자를 돌아오게 할것이다(6a). 하지만 이것은 가벼운 일이다. 그러니까 나의 종의 사명이 이것만으로 제한되지 않을 것이라는 얘기다. 그럼 무엇인가.

둘째는, “너를 이방(異邦)의 빛을 삼아 나의 구원을 베풀어서 땅 끝까지 이르게할 것이다(6b). 단지 이스라엘의 구원만이 아닌 이방의 구원이, 그리하여 하나님의 구원이 열방까지 이르게 하는 것이 종의 사명이다. 이로써 종의 첫째 노래가 점차 확장된다(42.4,6). 읽기에 따라서는 이스라엘의 구원은 부차적이고, 이방의 구원이 궁극적인 목표처럼 보일 정도다.

그럼 종은 누구인가. 처음에는 예언자처럼 보인다(1-3). 그런데 그 종은 이방의 빛인 것으로 볼 때 단순한 예언자의 표상은 아니다. 한편 이는 이스라엘이 할 수 있는 임무가 아니므로 나의 종은 메시야를 가리킨다. 이렇게 해서 예루살렘과 땅 끝이 메시야를 통해 만난다(5-6, 1.8).

   

 

너는 기업(8-13)

복락원(復樂園, 14-26)

 

이제 메시야(‘나의 종’)의 관심은 이스라엘에게 집중된다. ‘잡혀 있는 자흑암에 있는 자’(9a)였던 이스라엘이 변하여 마침내 은혜의 때구원의 날을 맞이한다(8a). 마침내 바벨론에서의 포로생활을 마감하게 될 것이다. 이와 같은 은혜의 구원은 마치 파노라마처럼 연속적으로 그려진다(8b-10). 장차 나라는 회복될 것이고(8b), 삶은 풍요로운 안식을 누릴 것이다(9b-10a). 그것은 긍휼히 여기는 이가 그들을 이끌되 샘물 근원으로 인도할 것”(10b)이기 때문이다.

하나님이 회복하시고 다스리는 나라는 이제 더 이상 장애물이 없다(11). 하나님이 친히 만드신 시온의 대로(大路, 11, 35.8)를 통하여 동서남북(東西南北)에서 당신의 백성들을 모으실 것이다(12). 이 백성은 야곱의 지파는 물론이고 이방의 뭇 민족에까지 구원이 미치게 될 것이다(6). 하나님이 택하신 나의 종인 메시야를 통해서 이렇듯 첫째는 유대인에게요 또한 헬라인에게”(1.16) 구원을 주시기를 기뻐하신다.

그럼에도 이스라엘은 오늘을 통해 내일을 보는, 즉 미래의 앵글로 현재를 보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14). 하지만 고난은 영광의 다른 이름이다: “생각건대 현재의 고난은 장차 우리에게 나타날 영광과 족히 비교할 수 없도다.”(8.18) 하나님의 열심은 메시야를 통해서 이 일을 성취하실 것이다(1-7 8-26).

이처럼 그 나라의 모습이 점차 드러난다. 하나님은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16a), 또한 네 자녀들은 빨리 걸으며 그들이 다 모여 네게로 오”(17-18a)게 되며, 그 결과 너를 헐며 너를 황폐하게 하던 자들”(17b)너를 삼켰던 자들이 멀리 떠날 것”(19b)이다. “너를 억압하는 자”(26a)도 마찬가지다. 그렇지만 땅은 하나님의 백성으로 가득 넘칠 것이다(19-21).

놀라운 것은 그 나라의 모습이다(22-26). 열방과 민족들의 지위고하(地位高下)를 무론하고 다같이 여호와를 알 것이며(22-23), 모든 것이 다 자기 자리로 회복될 것임을 말씀하신다(24-25). 마침내 모든 육체가 하나님을 알게 될 것이다(26). 사실 포로 귀환자들은 그렇게 많지 않았다. 1차가 42,360명이고(AD 536, 1.5-2.70), 2차가 약 5,000명 정도이기 때문이다(AD 458, 8.1- ). 결국 메시야의 승리는 종말에 있을 궁극적 승리를 말하는 것이다.

   

 

부스러기 묵상

 

    “하늘이여 노래하라 땅이여 기뻐하라 산들이여 즐거이 노래하라

      여호와께서 그의 백성을 위로하였은즉

      그의 고난 당한 자를 긍휼히 여기실 것임이라.“(13)

 

역사가 어둡고 암울할 때 메시야는 일하신다.

소망은 오직 하나님께 있음을 본다. 마침내 흑암’(9a)은 물러가고 빛의 세상이 열린다. 역시 이제 더 이상 죄에 잡혀 있는 자’(9a)로 머물러 있지 않아도 된다. 메시야가 오셔서 이를 성취하실 것이기 때문이다. 희망의 나라는 이렇게 동터 온다. 그러므로 멸시와 미움, 포로생활(종살이)이라는 고난은 끝이 났다.

하나님께로 가는 대로(大路, 11)가 열렸다. 이 크신 일을 이루신 하나님 앞으로 가까이 나아가기만 하면 된다. 곧 잔치가 시작될 모양이다(13). 이제 얽매이기 쉬운 모든 죄의 짐을 다 벗어버릴 때가 되었다: “수고하고 무거운 짐 진 자들아 다 내게로 오라 내가 너희를 쉬게 하리라.”(11.28) 이것은 아직 오지 않은 신약의 실재를 이미 구약의 환상 속에서 보는 기쁨이다.

하나님은 위로와 긍휼을 잊지 않으시는 분이시다(13). 죄행(罪行)의 결과 때문에(42.24-25) 바벨론에 포로로 끌려가서 고난의 풀무’(48.10)에서 연단을 받게 된다. 하지만 정신을 차리지 못하고 하나님이 가장 싫어하시는 우상숭배에 빠져있다(44.9-20). 이런 못난이들인 이스라엘임에도 하나님은 메시야를 보내사 저들을 구원하고, 그 구원의 강물이 이방(異邦)과 모든 육체에까지 흐르도록 하실 것임을 분명히 하신다(22,26b).

이제 천지(天地)가 다 노래하라 기뻐하라 노래하라.”(13)는 영광에 초대된다. 이것은 하늘과 땅이 이스라엘의 죄에 대한 증인의 자리에 있던 것과 완벽하게 역전된 것이다(1.2-9). 이것이 나의 종인 메시야가 이루실 하나님의 나라와 그 구원의 영광이다. 하나님의 꿈은 여기까지다. 아무리 못나고 추한 몰골일지라도 하나님은 새로운 피조물로 빚으신다. 이 기적 같은 영광이 내 안에도 시작되었고, 성취되어가고 있음이 감격스러울 뿐이다.

나를 돌아본다. 조금만 어렵고 힘들면 이스라엘처럼 여호와께서 나를 버리시며 주께서 나를 잊으셨다!”(14), 이제는 잊을 법도 한 옛노래를 다시 생각해 내는 것은 아닌지. 미래야 그렇다 치더라도 정작 중요한 오늘을 감당하기가 버거워서 고난의 자리만을 빙빙 돌면서 방황하고 있는 것은 아닌지. 내가 후일에’(20) 불러야 할 노래는 따로 준비되어 있다. 그 노래가 오늘이라는 삶의 악보가 되기를 소망한다. 나도 메시야의 영광에 참여해야 되지 않겠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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