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만사(世上萬事)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전 3.1-15).

  20221202(Eccl. 3.1-15)

  

 

 

세상만사(世上萬事)는 하나님의 손에 있다.

  

 

    본문 관찰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1-8).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사람은 측량할 수 없다(9-15).

 

 

의 주인이신 하나님

 

마침내 하나님이 주시는 것으로 해 아래의 세상이 새롭게 보여지기 시작한다(2.24- ).

하나님 없는 헛된 세상이 아니라 하나님이 섭리하시며 다스리시는 하나님 아래 있는 세상이 말이다. 이처럼 우주 삼라만상(森羅萬象)은 하나님의 거대한 계획이 펼쳐지는 섭리의 일부이다(1a). 하나님은 세상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마다 알맞은 때로 섭리하신다(1b). 이것들은 미리 정하신 사건들이기 때문이다. 여기 에 해당하는 단어의 뜻이 하나님에 의해 예정된 사건이라는 뜻에서 더욱 그렇다. 이처럼 9절 이하에서 하나님이 전면에 등장하시는 것은 지극히 자연스럽다.

 

 

모든 일에는 다 때가 있다(1-8).

 

만사는 예정된 시간에 시작되고 끝난다. 그 이유는 이것이 미리 예정된 일들이기 때문이다. 세상에 우연이란 없다. 다 때가 있다. 그런데 인생이 이걸 모르니까 -영적으로 볼 때 허물과 죄로 이미 죽은 자이기 때문이다(2.1-3)- 할 수 있는 모든 수단과 방법을 다 동원하여 하나님의 섭리를 거스르려 한다. 하지만 그것은 헛된 수고에 불과하다(1.2-2.23). 그러면 그럴수록 더 수고와 슬픔과 괴로움이 가중되고 결과적으로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

모든 인간은 다 날 때가 있고 죽을 때가 있으며”(2a)라는 말씀 그 사이를 살아간다. 어떤 인생도 이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을 벗어나지 못한다. 하지만 문제는 여전히 남는다. 그렇다면 인생이 그 때를 어떻게, 무엇으로, 또한 그것을 언제 알 수 있다는 말인가. 는 인간의 손에 있는 것이 아니고 하나님의 손에 있다는 것을 아는 것, 바로 이것을 아는 것, 이것으로부터 하나님의 때는 시작된다. 하지만 이것은 인간 스스로의 힘과 노력에 의해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다. 이것은 철저하게 하나님의 섭리의 영역이다. 그래서 224-26절이 이루어지는, 하나님이 주시는 의 주제로 넘어온 것이다.

 

 

하나님이 하시는 모든 일을 사람은 측량할 수 없다(9-15).

 

    “하나님이 모든 것을 제때에 알맞게 일어나도록 만드셨다.

      더욱이, 하나님은 사람들에게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는 감각을 주셨다.

      그러나 사람은, 하나님이 하신 일을 처음부터 끝까지

      다 깨닫지는 못하게 하셨다.”(11, 표준새번역)

 

에 대한 답이 바로 11절이다. 결국 사람이 애쓴다고 해서 섭리가 진행되는 하나님의 때라는 어떤 일에 무엇을 더 보탤 수 없으며(9), 단지 할 수 있는 것이란 수고일 뿐이다(10). 하나님이 하시는 일을 어찌 해 아래 인생이 깨달아 알 수 있으랴. 오직 사람의 마음에 과거와 미래를 생각하도록 주신 것을 통해 하나님의 때에 적절하게 응답할 뿐이다. 이것을 인위적으로, 인간적으로 좇다보니까 헛된 수고만 하는 것이고, 그래서 그럴수록 더 괴롭고(1.13), 실망이 되고(2.20), 슬프고(2.23), 마침내는 죄인’(2.26)으로 죽음에 이르고 마는 것이다(2.16).

솔로몬은 그래서 11절의 진리를 깨닫고서 비로소 다음 세 가지를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첫째, 사람이 사는 동안에 기뻐하며 선을 행하는 것보다 나은 것이 없다(12). 둘째, 사람이 먹고 마시고 하는 일에 만족을 누릴 수 있다면 그것은 하나님이 주신 선물이다(13). 셋째, 하나님이 하시는 일은 영원하기 때문에 더할 수도 없고 뺄 수도 없다(14a). 참으로 귀한 진리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하나님이 이같이 행하시는 이유는 무엇인가? 솔로몬은 그것을 알게 되었다고 말한다. 그렇다. 분명 인간 자기 자신을 위하여 -“내가 나를 위하여 ”(2.4a)- 사는 것이 아니다. 그렇다면 무엇인가?

 

    “사람으로 그 앞에서 경외하게 하려 하심인 줄을 내가 알았도다.”(14b)

 

다시 한번 전도서의 결론(12.13-14)224-26절에 이어서 두번째로 그 빛을 발한다. 하나님이 를 따라 섭리하시는 모든 일의 목표가 결국은 하나님을 경외하게 하기 위함임을 선포하시고 계신다. 하지만 이렇듯 그 때를 알 수 없기에 12223절처럼이 아니라 311절의 빛에 따라 12-14a절처럼 살도록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2.26)에게 은혜를 한량없이 부어 주신다는 사실이 오직 감격스럽고 영광스러울 따름이다.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은 인생에게 를 알 수 없도록 하셨다(11b).

그리고 그것을 고유한 하나님 자신의 섭리의 사건으로 붙드셨다. 하지만 그것을 알 수 없다는 것이 곧바로 방종과 원칙 없는 헛된 수고로 이어지는 것을 원치 아니 하시사 12-14a절처럼 살도록 하신다. 이처럼 사는 것이 하나님을 경외하는 인생의 본분이다(14b, 12.13-14). 그런데 하나님이 누구시며, 그 하나님이 인생에게 기대하시는 것이 무엇이며, 그럼 그것을 받아 살아가는 인생이 누구인가를 모르니까 12223절처럼 살아가는 것 아닌가.

헛됨과 헛됨(1.2-12.8) 사이에 끼어있는 무익한 인생이 그것으로부터 해방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다. 그것은 인간이 하나님이 아니며, 그래서 하나님이 섭리 가운데 열어 가시는 그 때를 기뻐하고(12), 하나님이 주신 선물인 줄 알아 만족하고(13), 더하거나 빼거나 하지 않는(14a), 바로 그런 하나님을 기뻐하는 자”(2.26)로 하나님을 경외하는 것(14b, 12.13-14), 이것이 인생이 본분을 따라 하나님의 섭리의 시간표 안에서 살아가는 인생이다. 이것만이 헛되다!’의 파국과 함께 죽음에 이르지 않는 유일한 길이다. 하나님은 예나, 지금이나, 장래에나 이처럼 섭리하신다(15).

하나님이 주시고(2.26), 당신의 주권적인 섭리의 시간표를 따라 인간에게 임하는 모든 를 주관하시고(1-8), 또 그것을 성취해 가시지만 그럼에도 그것의 시종(始終)을 다 깨닫지 못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뜻을 생각해 본다. 이 부분만큼이 하나님과 인간의 질적 구분이 아닐까 싶다.

인간이 노력하고, 애쓰고, 수고하고, 지혜와 지식을 따라 연구하고 학습한다 할지라도 이것들을 통해서 하나님의 섭리의 때를 인간이 다시 배열하거나, 축소하거나, 조정하거나, 바꾸거나, 가감(加減)할 수 없다. 인간은 224311절을 아는 만큼 12-14절로 살아가도록 부르심을 받았다. 이것이 인생의 본분이다.

나의 분수를 알고 살자. 하나님의 손에 있게 되어진 것이지, 내가 뭘 어떻게 한 것 때문에 하나님의 손 안에 있는 것이 아니라는 점을 분명히 하자. 헛된 수고를 하다가 그렇게 끝날 수 있었던 나를 하나님이 이처럼 취급하지 않으시고 224절 이하의 빛을 따라 사는 자로 부르셨다는 사실 하나만으로도 나는 충분한 은혜를 이미 받은 자이다. 그런데 하나님 밖에서 뭘 더 얻어보겠다고 발버둥치는지 …….

이제 서른 잔치는 끝났다(1.2-2.23). 다시 시작한다(2.24- ). 내가 내 인생을 만들어가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으로부터 주어지는 것을 따라 살아가는 하나님이 그 기뻐하시는 자”(2.26)로 섭리의 때 앞에 이미 서 있고, 지금도 서 있으며, 앞으로도 서 있을 것이다(15). 이것이 얼마나 건강하게 진행되는가를 12-14절을 통해 날마다 확인하며 신나는 천국의 삶을 살아가야겠다. 전도서가 조금씩 보인다. 신나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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