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윗, 사울과 다른 길을 찾다(삼하 21.1-22).

20221024-25(묵상)

  

 

 

다윗, 사울과 다른 길을 찾다.

삼하 21.1-22

 

 

    본문 관찰

 

    다윗 시대의 단편들(21.1-24.25)

    A 사울왕가의 몰락(21.1-14)

       B 블레셋 멸하기(21.15-22)

          C 다윗의 노래(22.1-51)

          C' 다윗의 유언(23.1-7)

       B' 다윗왕가의 용사들(23.8-39)

    A' 다윗의 인구조사(24.1-25)

 

 

다윗 시대의 단편들(21.1-24.25)

 

그럼에도 다윗에게는 아직 희망이 남아있다(21-24).

이 희망의 불씨는 다름 아닌 사울의 허물과 연결(대비)되고 있음이 흥미롭다. 사울은 하나님의 언약을 어기고 기브온 사람을 학살하였으나, 다윗은 이 죄악을 대신 속죄하는 모습을 보인다. 뿐만 아니다. 다윗은 요나단과의 언약은 물론 사울과의 언약까지를 기억하고 이를 지킨다. 그렇다면 다름 아니라 다윗의 희망은 사울과의 대비에서 그려진다. 이로써 비록 망가지고 흔들린다 할지라도 인간(다윗)의 희망은 그런 사람의 모습에서가 아니다. 그럼 무엇인가. 그런 인간일지라도 그 모습에서도 하나님을 붙들고 의지할 때 그를 붙드시며 용서하시는 하나님으로부터 희망은 시작된다.

 

 

사울왕가의 몰락(1-14)

 

3년이나 계속된 기근의 원인이 사울이 기브온 사람들을 죽인 것이었다고 밝혀진다(1, 4.10 참조). 이렇게 해서 사울의 자손들 중에서 요나단의 아들을 제외한 사울 집안의 후손 중 7명이 목매달아 처형된다(7-9). 한편 의문은 사울의 딸 메랍에게서 난 자들은 엄밀히 사울의 후손은 아니다는 점이고(8b), 동시에 다윗이 꼭 기브온 사람들을 죽어야 하는가이다.

기브온 사람들은 계약 파기로 보고 있지만 엄밀하게 따지면 이스라엘과 기브온 사이의 계약이지 사울과 맺은 것은 아니며, 이를 다시 다윗에게 계약 파기의 결과를 요구하는 것 역시 무리다. , 이런 정황에서 볼 때 기브온이 피의 복수를 요구할 수 있느냐 하는 점이다.

이 부분이 절묘하다. 다윗은 계속되는 사울가(베냐민 지파, 16.5-14, 20.1)의 위험으로부터 자유롭고 싶었고, 기브온 역시 다윗의 힘을 빌려 자신의 원수를 갚고자 한 것이 말이다. 동시에 사울가가 멸문한 것이 다윗에게 있는 것이 아님을 말하고자 한 것도 들어있다.

 

 

블레셋 멸하기(15-22): 다윗의 용사들

 

    [블레셋을 물리친 4명의 장수들]

    ①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15-17)

    ② 후사 사람 십부개(18)

    ③ 베들레헴 사람 야래오르김의 아들 엘하난(19)

    ④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20-21)

 

하나님은 비록 점차 꺼져가는 등불 같은 다윗의 인생후반전이지만 그를 붙들고 계시며, 함께하고 계심을 블레셋과의 연전연승에서 알려준다. 블레셋을 물리친 4명의 장수들은 공히 블레셋의 거인들을 상대했다. 스루야의 아들 아비새가 죽인 장수는 300세겔(3.5kg)이나 되는 창을 들고 다윗을 죽이려한 거인이었고(15-17), 후사 사람 십부개가 죽인 자도 거인족의 아들이었고(18), 베들레헴 사람 야래오르김의 아들 엘하난은 가드 사람 골리앗의 아우를 죽였으며(19), 다윗의 형 삼마의 아들 요나단도 손과 발가락이 하나씩 더 있는 거인이었다(20-21).

여기서 생각할 것은 다윗이 비록 밧세바 사건을 통해 하나님의 심판 아래 처했다하더라도 그러나 그 죄악 가운데서도 그럼에도 비록 흔들리며 걷는다 하더라도 하나님을 섬기며 믿음의 길을 걸어갈 때에 보여주시는 하나님의 얼굴이다. 그것이 무엇인가. 이처럼 이어지는 승리의 걸음걸이다. 다윗은 이처럼 흔들리면서이지만 묵묵히 하나님 앞에서 자신에게 주어진 소명자의 삶을 살아간다. 이 부분이 우리가 연주해야 할 인생보고서가 아닐까.

 

 

부스러기 묵상

 

하나님의 심판이 연속적이다.

다윗의 범죄로 말미암아 비롯된 것이라면 방향은 다윗이어야 한다. 하지만 사울가를 향해 심판의 칼이 향하고 마침내 사울가문은 멸문에 가까운 심판이 임한다. 그뿐 아니라 블레셋의 거인들이 하나 둘 추풍낙엽(秋風落葉)처럼 다윗의 용사들에 의해 무너진다. 한편 다윗이다. 그 역시 안팎으로 겹겹이 쌓여 집행되는 하나님의 심판 중심부에서 휘청거린다. 그러나 무너지지는 않는다. 비록 심판의 중심권 안에 처햐 있지만 하나님의 긍휼과 자비는 다윗을 감싸고 있다. 놀라운 은혜다. 세상은 다윗을 죽이려 하”(16b)지만 진노 중에라도 긍휼을 잃지 않으시는 하나님의 손이 다윗을 붙들고 있음을 보게 된다.

이게 어찌 다윗만의 인생보고서이겠는가. 여전히 지금도 우리의 이야기는 이처럼 하나님의 은혜 안에서 연주되고 고백되어진다. 다윗은 죄를 심었으나 하나님은 그것이 가리키는 심판의 집행 그 끝에 은혜의 단비를 허락하신다. 역시 우리들의 이야기이기도 하다. 다윗은 비록 이처럼 휘청거리며 그의 인생 하강곡선을 내려가는 중이지만 그러나 그런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은혜싸개 안에 붙들린 하나님의 사람으로 자기에게 주어진 인생을 호흡한다. 감사하고 다행이지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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