죄의 씨앗, 그 끝은 죽음이다(삼하 13.23-14.33).

20221009-11(묵상)

  

 

 

죄의 씨앗, 그 끝은 죽음이다.

삼하 13.23-14.33

 

 

    구조 관찰

 

    압살롬 텍스트(13.23-18.33)

    [압살롬의 난(13.23-39)]: 암논의 죽음(29)

    요압의 중재에 의해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다(14.1-33).

       A 압살롬의 반역(15.1-12)

          B 예루살렘을 떠나 도피하는 다윗(15.13-23)

             X 다윗의 신앙(15.24-37)

             x1 시바 vs 시므이(16.1-14)

             x2 후새 vs 아히도벨(16.15-17.23)

       A' 압살롬의 죽음(17.24-18.33)

          B'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는 다윗(19.1-15)

 

 

복수하지 말라!

 

압살롬은 마침내 암논에게 복수한다.

다말이 암논에게 강간을 당한 지 2년 후에’(13.23) 일어난 일이다. 욕망이 잉태하여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하여 살인이라는 비극의 복수를 가져온다. 하지만 암논을 잃은 것은 그 시작이다. 더 큰 비극이 다윗의 집에 심기고 있다는 것이 문제다.

 

 

1차 압살롬의 난(13.23-39)

 

    압살롬의 복수(23-30)

    왕의 눈물(31-33)

    압살롬의 망명(34-39)

 

아들 암논은 이복누이 다말을 강간하고, 아들 압살롬은 암논을 죽인다. 놀라운 것은 아버지의 죄가 자녀들에게서 그대로 나타나고 있음이다. 이 은밀한 복수는 양털 깎는 잔치에 다윗을 초대하는 일로 시작된다(24). 다윗은 사양하고, 압살롬은 암논을 대신해서 초대하고 싶어하자 이를 아버지 다윗이 허락한다(26). 그 잔치 사이에 압살롬은 종들에게 암논을 죽이는 복수의 칼을 허락한다(28-29): “칼이 네 집에서 영원토록 떠나지 아니하리라.”(12.10) 죽음이 기다리는 줄 모르고 암논을 보낸 것은 지난 날 우리아를 사지(死地)로 보낸 것과 묘하게 중첩된다. 정말이지 심은 대로 거두는 죄의 씨앗과 열매가 아닌가.

하지만 더 심각한 것은 압살롬이 암논을 살해하고서 외가인 그술 땅으로 망명을 떠난다(37a). 이후 3년이라는 시간에 들어있는 아버지 다윗의 언행이다(37b-39): “다윗은 날마다 그의 아들로 말미암아 슬퍼하니라 다윗 왕의 마음이 압살롬을 향하여 간절하니 무슨 일인가. 다윗은 이번에도 율법을 적용하지 않는다. 다윗은 암논이 다말을 강간했을 때에 암논에게 침묵하던 것처럼, 이번에도 암논을 죽은 요나단에게도 그의 죄행(살인)에 대해서 아무런 책임을 묻지 않았다. 이 씨앗은 훗날 더 큰 재앙, 2차 압살롬의 난으로 자라서 다윗왕조를 뿌리째 위협한다.

 

 

요압의 중재에 의해 압살롬이 예루살렘으로 돌아오다(14.1-33).

 

    요압의 압살롬 귀환작전(1-20)

    압살롬의 귀환(21-33)

 

살인자인 압살롬은 죽어야 하지만 이미 암논이 죽은 상태에서 과연 누가 다윗을 이어 왕위를 계승할 것인가? 이처럼 후계자 문제로 다윗는 심각한 혼란에 빠져 있는 중이다. 이때 요압은 족보상 유력한 압살롬, -그는 지금 외가의 땅 그술왕 달매에게로 가 3년 동안이나 망명 중에 있다.- 그를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는 일(정치적 복권)을 주도한다.

다윗가의 사람들은 흠집이 난 압살롬을 다윗왕조를 잇게 하려고 움직인다. 다윗도 수동적인 것 같으나 그의 마음에는 압살롬이 이미 후계자인 것은 사실이다(1). 이를 위해 요압은 드고나의 지혜로운 여인의 입에 다윗에게 해야 할 말을 넣어주고 모사를 꾸민다(2-17). 한편 다윗은 이를 알아차리고서 요압에게 압살롬을 데려오도록 허락한다(210.

한편 귀환은 하지만(23) 아버지 다윗을 알현하지는 못한다(24,28). 여기서 사무엘 기자는 압살롬을 중심에 놓고 그를 보여준다. 마치 사울이 왕으로 세워지는 과정에서 사울을 보여주는 것과 흡사하다. 이처럼 그는 왕이 될 외적(外的) 조건은 충분하기 그지없다(25-27). 그러나 그는 이미 내적(內的)으로 깨어진 자다. 소위 말하자면 그의 이력서는 그 누구와 비교해도 부족하지 않다. 오히려 넘친다.

그런데 사무엘 기자는 왜 갑자기 이 압살롬바라기라는 이야기를 들고 나오는 것일까. 그는 왕이 될 만 한 인물인 것은 맞다. 하지만 결정적으로 하나님과 연결된 어떤 언급이 없다. 그 자신이 하나님 쪽으로 무엇 하나 언행하고 있지 않을 뿐만 아니라 온 이스라엘도, 사무엘 기자도, 무엇보다 하나님은 아무런 말씀이 없으시다. 그렇다면 그는 하나님 없이 외적 조건들을 통해 백성들을 선동하여 왕권을 노리는 자일 뿐이다. 그 결과 자신의 자랑인 머리털(외적 조건)에 걸려 죽는다(18.9).

 

 

부스러기 묵상

 

    “압살롬이 도망하여 그술로 가서 거기에 산 지 3년이라.”(13.38)

    “압살롬이 2년 동안 예루살렘에 있으되 ”(14.28)

 

    “그의 머리털이 무거우므로 연말마다 깎았으며 ”(14.26)

 

사무엘 기자는 압살롬의 머리털을 자랑한다.

다윗왕조를 이어갈 자가 14장에 서 있다. 그는 온 이스라엘에 아듬다움의 표본이다(25). 그리고 머리털 자랑이다(26). 하나가 더 있는데 그의 딸 역시 얼굴이 아름답다는 소식이다(27). 그런데 딱 거기까지다. , 생각해 보라. 겉모습이 아름다운 것이 무슨 문제이겠는가. 하지만 겉으로만의 아름다움이라는 문제는 심각하다. 다윗왕조가 세울 그 나라가 어떤 나라인가. 아브라함언약(창세기 15) 시내산언약(출애굽기 19) 다윗언약(사무엘하 7)을 계승하고 완성하여 장차 하나님의 나라를 바라보아야 할 소명과 사명의 가문이 아니던가.

그런데 정작 이러한 것들은 어디 하나 찾아볼 수 없다. 형 암논을 죽이는 복수의 칼춤을 추었으며, 다시 예루살렘에 돌아온 목적이 오직 다윗의 뒤를 잇는 후계자로 인정받는 것이 전부일 뿐이다(28-33). 그는 오직 이 일을 위해 움직일 뿐이다. 여전히 하나님을 찾고, 구하고, 하나님의 율법과 말씀에 귀기울이는 그 어떠한 언행도 찾아볼 수 없다. 무려 5년이라는 시간에 말이다(13.38, 14.28). 과연 이런 자가 다윗왕조의 후예일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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